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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칼럼은 전남일보 11월 5일자 "현장에서" 란에 실린글임을 밝힙니다>
이천영:광주새날학교 교장, 나눔방송 대표
'귀환'이란 말은 국권이 유린당해 포로로 끌려갔다 탈출하거나 자연스런 환경변화로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그후 타민족을 포용하는 황제가 등장하자 이스라엘 민족의 귀향을 허용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간 눈물어린 사례들이 많다.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당나라는 약 20만명의 고구려인을 포로로 잡아 중국대륙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중국 전역에 흩어져 살게 했다.
또 원나라가 들어서고 한반도가 몽골군에 의해 점령되자 많은 고려인들이 포로가 되어 중국 대륙으로 끌려가야 했다. 임진왜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이 신식 조총을 앞세워 한반도를 파죽지세로 유린했고 전쟁이 끝날 무렵 많은 조선인들의 두 손을 묶어 일본으로 끌고 갔다. 그후 구한말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또다시 침탈되자 많은 조선인들이 개척 식민단이라는 이름으로 끌려가거나, 또 항일운동을 위해 연해주와 만주로 망명을 가야했다. 200만 조선족과 50만 고려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5000년 한민족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민족은 포승줄에 묶여 피눈물을 흘리며 정든 고국을 떠나야 했던 약소민족의 서러움과 한(恨)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명하고 명백한 역사의식과 민족애를 가지고 고려인 동포를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연해주로 갔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동포를 재외동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1948년 입법의회가 통과시킨 '국적에 관한 조례'를 통해 우리 국민이 된 사람들이어서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부는 안보상의 이유와 국내 노동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들의 귀환을 제약하고 불법체류자라는 멍에를 지워 강제추방을 일삼아 왔다. 또 재외동포법상의 권리를 재외동포에게 부여할 때에도 이들을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이 법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으며, 이에 국회는 재외동포법을 만장일치로 개정하여 이들을 재외동포로 포함시켰고, 이를 대통령령으로 공포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도 법무부는 고려인 동포에 대해서는 재외동포법을 전면 시행하지 않고 있어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주민 중 일부는 비자문제로 가족이 생이별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현지 고려인 동포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동포들은 구 소련연방 붕괴 후 살던 곳에서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 유랑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들 가운데는 무국적자가 된 동포들이 2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고국으로의 귀환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이들은 우리말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너무도 절실한 때가 온 것이다.
따라서 재외동포법 적용은 물론 이스라엘이 실시하는 귀환동포법을 제정 동포들이 조국으로 귀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법을 통해 고려인동포들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조국이 품어준다는 포근함을 가슴에 담을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 그래서 그동안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우리가 덜어줘야 한다. 같은 피를 나눈 내 민족이니까.
과거 인구가 폭발할 때 외국 이민을 적극 권장했지만 지금은 가임여성의 출산율이 1.2명으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가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유랑민으로 전락한 고려인동포의 국내 귀환을 적극 권장, 환영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한데, 외국인노동자보다 고려인 동포들을 우선 활용하는 것이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이라는 국익 차원에서도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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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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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년 11월 05일 03시 4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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