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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방송] 고려인마을 한글문학기획전, 버팀 자체가 문학이 된 시인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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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을 통해 다시 불러낸 고려인 한글문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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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현재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소련 시기 혹독한 역사 속에서도 끝내 언어를 놓지 않았던 고려인 문학인들의 삶과 문장을 통해, 연표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내면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전시의 중심에는 고려인 시인 김남석(1899-?)이 있다. 그의 시는 강제이주와 유랑이라는 거대한 역사 앞에서도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낮고 절제된 언어로 오래 남는다. 김남석은 비극을 설명하거나 해석하기보다, 설명할 수 없게 된 상태 자체를 시로 기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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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 자체가 문학이 된 시인 ‘김남석(1899-?)’/사진=고려인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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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의 시는 늘 일상의 바닥에서 시작됐다. 집단농장의 아침, 다시 떠오르는 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그의 언어는 사건을 요약하지 않고 감각을 남겼다. 고향을 잃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비극을 호명하지도 않았다. 다만 고향을 말할 수 없게 된 상태를 그대로 두었다.
“우리는 도착했으나/도착한 곳의 이름은/아직 우리 것이 아니다.” 이 몇 줄에서 상실은 해설되지 않는다. ‘도착’과 ‘이름’ 사이에 남겨진 간극, 그 침묵 속에서 독자는 강제이주의 무게를 스스로 느끼게 된다. 김남석에게 침묵은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과잉 소비하지 않겠다는, 시인이 선택한 윤리적 태도다.
김남석의 시에서 노동은 혁명적 구호도, 영웅의 서사도 아니다. 그는 지친 몸으로 하루를 건너는 사람을 썼다. “해는 다시 떠오르고/우리는 같은 밭으로 간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또 하나의 생을 남긴다.” 여기에는 성취도 낙관도 없다. 대신 반복과 지속이 있을 뿐이다. ‘버틴다’는 사실 자체가 존엄이 되고 있다.
이는 소련 공식 문학의 과장된 노동 찬가와 분명히 다른 결이다. 김남석의 시는 체제를 찬미하지도, 노골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 있는 몸의 리듬, 황무지에서 하루를 이어가야 했던 인간의 시간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울러 김남석의 시에는 세대와 언어의 간극 또한 조용히 스며 있다. 그것은 고발이 아니라 생활의 장면으로 드러난다. “아이들은 다른 말로 노래하고/어른들은 그 노래를 이해하지 못한 채/고개를 끄덕인다.” 탄식도 분노도 없다. 아이들이 부르는 러시아어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정하는’ 태도만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김남석은 언어 상실을 외치지 않았다. 그는 그 상실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순간을 보여준다. 고려인 2-3세의 정체성 문제를 미리 예감한, 깊고 조용한 시선이다.
이번 전시는 김남석의 이러한 시적 태도가 어떻게 이후 세대의 고려인 시로 이어지는지도 함께 비추고 있다. 윤수찬과 김블라디미르의 세계는 서로 다르지만, 출발점에는 김남석이 남긴 ‘설명하지 않는 윤리’가 놓여 있다.
윤수찬의 시는 고발 대신 여백을 남긴다. 흙처럼 낮아진 언어로 노동과 귀가의 풍경을 기록하고, 독자가 그 여백에 자신의 체온을 더하게 한다. 김블라디미르의 시는 기억을 현재형으로 불러내 공동체를 향해 말을 건넨다. 질문은 연대가 되고, 시는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된다.
따라서 김남석이 침묵으로 견뎠다면, 윤수찬은 낮은 언어로 남겼고, 김블라디미르는 현재형의 목소리로 불렀다. 이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격동의 시대가 각 시인에게 요구했던 역할의 분화다.
오늘, 김남석의 시를 다시 불러내는 일은 단지 한 시인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잃고 이름조차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던 선조들이 낯선 중앙아시아 황무지의 처절한 노동 속에서도 한글과 문학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는 사실, 그 치열한 삶의 태도를 후손에게 전하는 일이다.
김남석의 시는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함께 버텨낸 시간을 남겼다.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기억을 건네는 그의 언어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역사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고려방송:임용기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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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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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년 02월 04일 06시 4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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