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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방송] 광주 고려인마을, 사라질 뻔한 기억을 품은 ‘고려인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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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의 상처를 모은 한 사람의 생애
-“유랑의 기억을 박물관으로”…
-고려인 유물 수집가 고(故) 최아리따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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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월곡동, ‘역사마을 1번지’로 불리는 광주 고려인마을. 이곳에 고려인박물관이라는 꿈의 씨앗이 심어지기까지, 한 여인의 고단한 발걸음이 먼저 지나갔다. 그 이름, 고(故) 최아리따(1942-2014)씨다.
그녀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자리에서, 기억을 대신 붙잡은 사람이었다. “지금 모으지 않으면, 영영 사라집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된 직후, 연해주 곳곳에 흩어진 고려인 자료들은 주인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1937년 가을, 연해주 고려인 수십만 명은 하루아침에 화물열차에 실렸다. 이름도, 기록도, 고향도 남기지 못한 채 중앙아시아로 옮겨졌다. 차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 철로 연변에 묻힌 노인들. 역사는 그 숫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한 장의 문서와 한 권의 책은 증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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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오랫동안 고려인 유물을 수집해온 최 아리따(1942-2014)씨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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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제이주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물건이 압수되거나 불태워졌고, 남은 것들조차 두려움 속에 감춰지거나 사라졌다.
하지만 이 피어린 여정 가운데도 살아남은 한 장의 졸업장, 빛바랜 흑백사진, 이름 모를 일기장 한 권 등은 누군가에겐 낡은 종이였지만, 최아리따 씨에게는 한 공동체가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말했다. “지금 붙잡지 않으면, 우리 역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한 사람의 힘으로, 역사와 싸우듯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 재소 고려인 사회에서 유일한 모국어 신문이던 고려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관장이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2007년,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2』를 통해 구전 가요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 책을 읽고 먼저 연락해 온 사람, 바로 최아리따 씨였다.
이미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있던 그녀. 그러나 국한문이 뒤섞인 문서와 필기체 한글 자료는 혼자 힘으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하나의 사명을 공유하게 됐다. 자료를 분류하고 해독하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잊혀진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늘 같은 말을 했다. “고려인 역사박물관을 세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였다. 특정 민족의 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이라도 좋습니다. 어디든 좋습니다. 고려인의 역사를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2014년 봄, 한국 내 가능성을 알아보던 중 그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박물관은 아직 설계도 위에만 남아 있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러시아에서 유물을 매입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또다시 흩어질 위기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오랜 시간 함께 자료를 정리해온 김 관장이 뜻을 이어가길 바랬다.
김 관장은 개인적 재정 부담을 감수하며 모든 유물을 인수했다. 김 관장은 2016년 귀국 이후,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이때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유물이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방과 거실, 복도까지 빼곡히 쌓인 상자들. 생활은 최소한이었지만, 최아리따 씨의 유물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였다.
전환점은 광주 고려인마을과 만남이었다. 임금체불을 당한 고려인을 서로 돕고, 그 소문이 또 다른 이들을 불러 모은 마을. 라디오 방송국과 미디어센터,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와 종합지원센터가 함께 숨 쉬는 공동체. 이곳에서 박물관의 가능성이 보였다. 박물관은 이제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한 세기의 기억을 복원하는 역사적 약속이 되었다.
따라서 최아리따 씨가 지켜낸 유물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는 존재했다”는 침묵의 외침이었다. 이에 김 관장은 “최 씨의 꿈은 고려인 역사박물관이었다” 며 “그 뜻을 공동체의 품으로 돌려놓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고 말한다.
이제 최아리따 라는 이름은 한 수집가를 넘어, 사라질 뻔한 역사를 끝내 붙잡아낸 기억의 수호자로 남아있다.
또한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은 건물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한 여인의 집념, 그리고 기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오늘도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고려방송: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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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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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년 02월 28일 07시 2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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